사회적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사회복지사 : 이명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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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난미 | 일촌공동체 사무국장

 

사회복지사 선서문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존엄성과 사회정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개인․ 가족․ 집단․ 조직․ 지역사회․ 전체사회와 함께 한다.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이익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운다.

나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준수함으로써, 도덕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회복지사로 헌신한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명예를 걸고 이를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뜬금없이 왜 사회복지사 선서문이냐구요? ^^ 이번에 제가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다보니 이와 다르지 않더라고요.그리고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요. 정말 이 선서문처럼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기에…

저는 대화를 이어가는 내내 제 모습을 되돌아보며 부끄럽기도 했지만,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는 제 삶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함께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인간과복지 출판사 대표, 책마을 이장,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세밧사) 대표까지… 여러 직함을 갖고 있지만 이 대화 속에서는 그 어떤 호칭보다 그냥 이렇게 불러드리고 싶어요.

 

사회복지사 이명묵 선배님을 소개합니다^^

 

▣ 오랜 세월, 삶으로서 일로서 현장을 지켜오며 살아오신 이야기. 긴 대화의 시작은 선배님이 살아오신 사회복지사로서의 길, 삶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청해봤어요.

 

사회복지사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할게요. 나는 직업은 사회복지사인데, 사회복지도 하면서 출판도 하면서 복지ngo도 하면서, 문화스포츠복지까지? 복지를 넓게 그리고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복지실현을 하려고 했던 것이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지 않았나 싶다.

 

첫 현장은 고아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4학년 때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데… 그때 내 기억엔 행정고시를 봐서 고급공무원을 가는 사람이 많았고, 현장으로 가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현장으로 가면 가난하게 살고 사회적 지위도 낮고… 그건 그때의 상황이었다.

 

나는 현장을 가면서 내 스스로 조건으로 꼽은 것은…

비전이 없어야 한다  | 월급이 적어야 한다 | 근무환경이 아주 나빠야 한다.

사회복지는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편하게 일하려고 하는 것도, 미래의 희망과 보장을 보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맞다고 본다. 지금 대학생들에게도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사회복지철학에 입각해서도 이런 곳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는 세밧사를 통해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원하고 있지만은 당장 내가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나 라고 생각했을 때는 ‘ 우리사회에서 가장 고통 받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 ’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 비전이 없어야 한다. 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보통의 사람은 내가 어떤 가치관으로 어떤 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내가 그 직장에 들어가서 5년, 10년 뒤에 내 인생은 어떤 꽃이 피나? 승진? 전망이 있을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비전은 좋은 조건에서도 성취할 수 있으나, 나는 황무지에서 일구는 비전에 더 가치를 두었었다.

 

현장에 들어올 당시 고아원은 365일 24시간 근무체제, 월급도 적을 뿐만 아니라 호봉제도 없으며, 조직체계도 단순해서 일반직원, 총무, 원장으로 되어있으며 총무와 원장은 보통 설립자 가족의 몫이라 승진이나 일반적으로 기대할 비전도 전혀 없었다.

 

지내고 보니, 하나 더 생각되는 것이… 가장 어려운 현장에서 일하면서 지내고 보니. 두려운 것이 없고 어딜 가도 잘 할 수 있겠다 라는 자신감이 내장되는 것 같았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고 부딪혔던 부분은, 사회복지사들이 참 깝깝하다는 것! 사회복지가 뭐고? 사회복지사가 뭐하는 사람인가를 고민하며 일하고 있나? 사회복지사인가? 월급쟁이인가? 아쉽게도 적지 않은 사회복지사가 그저 월급쟁이처럼 내 눈에 비춰졌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복지사들의 생각을 좀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20년 전 그때 나는 책을 통해 사람의 생각에 변화를 희망하며, 생각을 나누고 자극을 주거나 또 어떤 비전을 공유하는 건 어떨까 싶어 인간과복지 출판사를 차렸다.

 

인간과복지 출판사 문을 열 때는 책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좋은 점이기도 했고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사회복지 출판계가 불모지였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했으면 지금 빌딩이라도 지었을 텐데… 그랬음 지금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하지 못했고 오롯이 사회복지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책을 출판하다 보니 대체로 안 팔리는 책들이었다. 아쉬운 건 있지만 양자 선택이었다 하면 잘했다 하는 자부심이 있다. 지금까지 22년째 하고 있다.

 

2009년에 여기 서부장애인복지관 관장으로 오게 되서 장애인복지 일을 하게 됐다. 그러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을 필두로 복지국가 바람이 불었지. 그런데 복지국가 담론은 풍성해지는데 그 담론을 만들어내고 전파하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과 교수가 극소수인 현실에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현장의 10만 명 사회복지사는 다 어디가 있나? 수천만 명의 교수는? 역사와 세상이 이렇게 막 뒤집어지고 있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2011년 1월부터 사회복지책마을 기획강좌를 시작했고, 책마을에서는 복지국가에 대한 강연을 많이 열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들이 사회복지만 공부하니까 안목이 좁아진다는 생각에서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뭐 이런 걸 접할 수 있는 강좌를 열어서 관심 갖고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싶어 다양한 강연들을 이어갔다.

 

인간과복지를 통해 책으로 했지만 책으로만 사람이 변하기 어려워 강연으로 이어갔고, 복지국가흐름에 함께 나섰고 그러면서 이후에는 사회복지사 나름대로의 사회복지운동 복지국가 NGO가 있어야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세밧사를 2012년 봄부터 준비를 하고 첫 번재 활동으로 2012년 7월 복지국가촛불을 시작했다. 이번 달까지 하면 만2년을 했고, 촛불집회가 세밧사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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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밧사 활동을 하면서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도 중요하여 복지시민단체들과 활발히 연대하고 있고, 최근에는 사회복지세, 무상의료, 기초연금 등의 운동을 하고 있다.

 

▣  사회복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공부하고, 행동하고, 이끌어주시는 삶의 이야기가 참 신기할 정도이지 않나요? 조금은 특별하다 싶을 만큼 명확한 가치관이라 여겨져서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사회복지공부를 왜 하고 싶으셨어요?

 

내가 대학을 30세에 들어가서 83학번으로 다녔다. 그래서 그때 내가 강의실에 들어가면 시간강사가 온줄 알고 수업준비 모드로 전환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때가 박정희정권 유신시절이었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 신민당 쪽에 가서 활동을 좀 했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좌절을 크게 겪고는 인생에 대해 허무주의에 빠져, 그냥저냥 사회생활을 10년 했었다. 그러다 ‘이대로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학교선생님을 하면 학생들과 재미있게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범대학을 가기 위해 29살 1월에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해 8월 문교부장관이 장애인은 사범대에 입학시키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 당시 교사가 제자를 납치하여 학부모에게 돈을 요구한 사건이 있어, 교사의 자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는데… 그 화살이 엉뚱하게도 장애인에게 온 것이다. 그 사건의 범인은 S대 사범대학 체육학과를 졸업한 비장애인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장애인인데, 갑자기 목표가 사라졌다. 나 스스로는 장애인에 대하여 없던 자의식이 생겼고, 그럼 장애인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사회복지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근데 입학하고 보니 장애인복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복지공부가 재미있어, 장애인복지의 진로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  정말 어처구니없는 정책으로 그 당시 엄청 힘드셨겠지만, 저희는 존경하는 선배를 한 분 만나게 되었네요. 하하^^ 그 시절, 사람에 대한 예의는커녕 정말 기본조차 없었다 싶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인권에 대한 관점, 의미..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일 텐데요~ 인권에 대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관장님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신지요?

 

나는 ‘사회복지는 인권이다’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기관, 시설들은 사회복지시설만의 정체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NGO의 장점으로 역동적이고, 도전적이고, 창의적이고, 소통하는 점들을 사회복지시설에서도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에너지로 삼으면 좋겠다.

 

▣  사실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 각 사회복지시설들이 위탁제도에 속해 있 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사실 행운이다. 내가 처음 고아원을 갔을 때 월급을 안줘도 되니 일 하겠다 하면서 일자리를 찾아다녔었다. 그런데도 자리가 없더라. 나중에 알고 봤더니 고아원에 사회복지사 TO가 없는거야! 병원에 의사가 없고 학교에 교사가 없는 것과 똑같은 거지! 그렇게 아주 척박하고 열악한 곳을 내발로 들어갔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것은 법인 직영 복지관이기도 하고 또 법인대표께서 이러한 활동을 지지하시는 분이라, 나는 지금 행운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어떤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할 도리를 120% 했을 때 나에게 100%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봐. 나부터 우리 직원들을 대할 때도 그렇다. 내가 우리 법인에 와서 일한지 27년 되었는데… 내가 사회복지사로 첫발을 디딘 고아원이 우리 법인 내의 은평천사원이고, 내 나름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연결선 상에서 배려되는 부분이 아닐까…

 

후배들한테도 월급쟁이처럼 일하지 말고 혼을 바쳐 일하라고 하는 것이 자기한테 득이 되는 것이지, 절대 손해되는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  월급쟁이처럼 일하지 말라는 말씀 가슴에 담으며^^ 어쨌든 위탁제도로 자유롭지 못한 기관들에게는 정말 부러울 이야기네요. 법인과 기관,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으니… 진짜 행복해 보이세요. 그렇게 왕성한 활동 중에서도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세밧사) NGO 활동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내가 후배들 만나면 꼭 물어본다.“사회복지사가 뭐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그러면 다들 뜨악한다. 그럼 나는 항상 쉽게 생각하자고 한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고, 교사는 학생 가르치는 사람,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 그럼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 하는 사람이지. 너무 쉽지요? 그럼 문제는 사회복지는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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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에 ‘사회복지는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억제하는 조건을 제거하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생동시키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들은 그러한 일에 관심 갖고 일을 해야 되지 않나… 그런 취지에서 세밧사는 그런 조건을 제거하고 만들어나가는 그런 운동을 한다.

 

5가지 중요한 가치로 정의, 인권, 평등, 연대,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활동한다. 정의가 있나 없나? 인권이 보장되어있는 사회인가 아닌가? 양극화, 빈부격차 대기업 중소기업 등 우리사회는 평등한가? 연대는? 연대도 없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하물며 사회복지 안에서도 칸막이 복지가 존재한다. 장애인복지 하는 사람들은 노인, 아동복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 안에서도 연대가 없다. 대한민국 사회는 연대가 없는 사회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정치적 중에서도 절차적 민주주의만 있는 상황이라 민주주의 영역에서도 우리가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세대적 사명이라는 것 들어보았나요? 지금 70대~90대는 빈곤을 극복해서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세대적 사명이 있었고, 그 사명을 완수했다. 지금 50대~60대는 독재타도라는 세대적 사명이 있었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럼 지금 20대~40대의 세대적 사명은? 5가지 가치(정의, 인권, 평등, 연대, 민주주의)가 담긴 인권국가를 만들어 후대에게 물려줘야하는 것인데, 젊은 사람들이 세대적 사명을 잘 몰라.

세밧사는 이러한 세대적 사명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가지며 함께 움직이고 있다.

 

세대적 사명이라는 것.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명확히 표현할 수 있어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그 무게가 무겁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지금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니, 이 시대에 사회복지를 하고 있는 저희들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  지역을 넘어 사회를 아우르는 사명에 복지기관, 시설들도 어려움 속에서도 연대하고 함께 해야 하는데 사실 장애인이면 장애인, 노인이면 노인이라는 현장의 묵은 생각이 아직도 남아있어 현장의 활동가들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현재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 계시니, 어떤 운영철학으로 직원들과 함께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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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장애인복지관은 개관 초기 당시부터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하면서 내가 관장으로 왔을 때가 2009년 1월, 복지관이 개관한지 15년 됐을 때인데 그때는 어느 정도 장애인복지관으로서의 역할과 구조는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장애인복지와 더불어 지역복지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 했을 때 직원들은 뜨악! 하면서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 지역복지팀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네들은 팀 정체성과 다르지 않으니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월급은 복지관에서 받지만 나가서 지역의 일을 하라고 했는데, 고맙게도 직원들이 그 때 일을 너무 잘해주었다. 그때 직원들이 너무 신바람 나게 잘했던 거야~ 그렇게 1년 지나고 나서 지역으로부터 피드백이 오고, 지역에서 환대해주고, 마음의 문을 연 소통이 시작되는 거야. 지역팀이 나가서 농사지은 결과지~

 

그리고 또 우리 통합보육사업도 우여곡절 끝에 지역 활동의 힘으로써 발전하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 지역과의 관계, 협력 이런 것이 반드시 우리가 지역에 기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도 돌려받는 것들이 있구나. 를 직원들이 피부로 느끼면서 지금은 우리 직원들 100%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지역과 같이 한다는 것을 뼈 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우리가 지역으로 나가자고 했던 이유는 장애인들이 장애인복지관에 왔더니 너무 편안하고 행복한거야~ 나는 그건 아니라는 거지. 지역에서 행복하고 편안해야지~ 이게 좋은 복지국가지! 지역에서는 너무 불편하고 불행한데, 복지관에만 오면 편안한 게 맞느냐~? 나는 최종적으로는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이 없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냥 지역에서 노인들이 장애인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고 그러면 굳이 이러한 특정한 복지관이 필요 없지 않는가 싶어.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지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하고 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존재 이유가 뭐냐? 지역이 은평구가 장애인이 살기 좋은 지역사회로 변화되는 것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존재 이유라고 생각해서 지역으로 나갔지~

 

사회복지시설이나 시설장들이 시대의 흐름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짚어주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사회복지종사자들의 인식을 새롭게 해줄 수 있고 사회적 리더십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사회복지시설이 뭐하는 곳이냐? 1차적인 목적에 한정지어서 생각하기엔 좀 아쉽다. 1차적인 것에는 물론 최선을 다하면서 2차적으로 지역사회변화에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사회복지라고 나는 믿는 것이고 그것이 나 개인의 생각이기 보다 사회복지윤리강령 전문과 그 앞에 사회복지 선서문에 보면 사회복지사를 인권옹호자, 사회정의실현자, 공익수호자라고 정리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인권옹호자이면, 사회복지시설은 인권옹호시설 기관 활동을 해야 한다. 사회복지사가 사회정의실현자이면, 사회복지시설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사회적 책임을 가진 조직이다. 사회복지사가 공익수호자이면, 사회복지시설은 공익수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 또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들이 세금으로 인건비, 운영비를 주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복지사답고 사회복지시설답기 위해서는 인권, 사회정의, 공익에 대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맞다. 1차적으로 보호나 서비스 기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그건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만 해놓고선 우리가 다 했다고 할 수 있는가? 또 사회복지사 활동의 범위를 개인, 가족, 조직, 단체, 지역사회, 전체사회. 라고 활동의 범위가 나열되어 있다. 이렇게 확장해 나가라는 것이지.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한정되어 있으니, 역할을 30-40%만 하면서 월급만 받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복지관도 지역복지한다고 하면서 복지시설들끼리만 연대하면 그것도 50%이다. 여러 시민 사회단체, 학교, 보수단체, 관변단체와도 함께 해야 한다. 결국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인권, 사회정의, 공익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남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언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 한정되어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그 현장에 대해 근본에 맞춰 이야기해주시니 이해도 쉽고, 받아들여지기도 수월한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녹여내고 실천하고 변화되기는 쉽지 않음을 저 스스로도 너무 잘 알기에, 이를 위한 깨침의 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주시면 어떨까요?

 

첫째는 왜사나? 그런 자기질문을 하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나는 사회복지를 위해서 살고 싶은 사람이 올 자리가 사회복지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아닌 사람은 좀 떠나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자기한테도 또 사회복지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내가 사회복지 자격증을 가졌다고 다 사회복지사는 아니고 또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한다고 다 사회복지사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자기가 사회복지를 위해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꺼냐! 에 응답할 수 있어야 사회복지사다.

 

두 번째로는 사회복지를 재밌고 신바람 나게 멋있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4가지 요소를 고민해 보면 좋겠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 전문지식이라고 하는 것, 철학이라고 하는 것,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4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대부분 전문지식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이다. 대학교육이 잘못되다 보니까 전문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성만 갖고 그 사람을 사회복지사라고 볼 수 있느냐~ 아니라고 본다.

 

소외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관심, 배려, 열정, 연대의식,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 쌍용차, 강정마을, 세월호, 용산사건 등의 사건을 사회복지 문제로 잘 보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사업들만 사회복지로 본다. 너무 협소하게 사회복지를 보는 것이 아쉽다. 우리 복지관 이용자, 참여자가 아니더라도 사회 일반에서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연대, 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사랑, 영성으로 있어줘야 한다.

철학이라는 것. 사회복지 왜하나? 자기 철학적 고민이 개인, 사회복지계도 다 약하다. 끊임없이 개인, 조직, 전체단위로 고민하고 논쟁하면서 키워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철학이 약하고 어떤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 사회복지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운동이라는 것. 사회행동에 대해 학교에서도 현장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굉장히 드물어서 경험하고 배울 기회가 없다. 이러한 4가지가 잘 조화로워야 신바람 날 텐데 그것이 안 되니 월급쟁이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는 것 같고, 그것을 부끄러워 할 줄 도 모른다.

 

셋째로는 사회복지를 넓게 봤으면 좋겠다. 학부에서 사회복지를 배웠으면서도 여전히 사회복지만 공부한다. 그러니 사회복지 하는 사람들끼리만 말이 통하고 세상 사람들과는 말이 안 된다. 정치, 경제, 철학, 사회, 심리, 문화, 법학 등 다양하게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 문제는 여러 학문이나 현실과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복지사가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했으면… 관심 가졌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요즘 마른장마지. 농촌 논밭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기우제를 지내고 할 때 사회복지현장에서 나오는 그림은 마을주민이나 자원봉사자를 조직해서 물동이 릴레이로 가뭄을 극복하는 것. 감동적인 장면이지. 비유를 하자면 이런 활동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올해는 일단 그렇게 하더라도, 내년, 후년에는 반복되지 않도록 그 마을에 저수지를 만드는 일이 사회복지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소득가정에 밑반찬서비스를 계속 할 것이냐?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복지사가 해야 할 역할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하면 되지!

 

▣  사회복지활동뿐만 아니라 개인, 가족에게도 다양한 역할들이 주어져 있으실 텐데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은 또 어떤 의미들을 담아가며 하실 계획이신지 들려주세요.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가 쓸 수 있는 시간과 돈, 체력이 한정되어 있을 텐데 어디에다 쓰느냐가 개인의 가치관이고 인생관일 텐데, 사회복지사라면 좀 더 공적인 사회복지적인 가치로 무장되었으면 좋겠다.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일에 열심히 해야겠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단체, 다른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연대하면서 최종적으로 스웨덴, 덴마크 보다 더 좋은 복지국가를 기대한다. 나는 사회복지사들이 앞장서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이는 8월에 복지국가 청년캠프를 진행할 계획이니 관심 갖고 많은 이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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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처음으로 사람사이 인터뷰를 2차에 걸쳐 꽉꽉 채워 진행했네요.

이번 사람사이는 한 사람의 삶을 나누고, 사귐을 넘어 사회복지 철학에 대한 강의한편을 찐하게 들었다 싶어 더욱 뜻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한창 휴가시즌이지요?

저는 쉼에 하나를 더하여, “나의 삶, 내가 선택한 나의 일에 대해 나는 얼마나 부지런히 성찰하고 있을까?” 란 화두를 떠올리며 지내봐야겠다 싶네요.

 

우리가 하고 있는 지금의 일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없지만… 좀 더 주위를 돌아보고, 지역을 돌아보고, 사회를 돌아보며, 살펴봐야 할 세대적 사명에 우리의 힘과 열정, 진정성을 가까이서 담아가려면 말이지요.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적고, 발로 뛰는 게 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 살아오셨고, 앞으로의 삶도 그리 채워 가실 선배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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