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책장] 내 날개옷은 어디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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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11

글 안미선, 그림 장차현실 | 철수와영희 | 2009

 

글. 오영식 | 일촌공동체 회원 / 도봉서원종합사회복지관

 

언제고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한번 추천하리라 마음먹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은 전 직장인 시소와그네 강북영유아통합지원센터에서 일할 당시 영유아양육자 생활수기집 출판을 준비하며 처음 만났다. 한국의 척박한 영유아복지 환경 속에서도 집 안팎으로 열심히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 영유아가정 엄마들. 그들의 돌봄 이야기를 그들 스스로의 언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센터 사례가정 엄마들을 대상으로 여성주의 글쓰기교실을 열었고 그 강사로 모신 분이 이 책의 저자인 안미선 님이다.(안미선 님은 “낭미”라는 별칭을 쓰는 한국여성민우회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글쓰기교실을 수료한 엄마들의 글을 엮어 출판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런 센터 운영중단으로 보석 같은 주민들의 글은 결국 자체 책자로 발간되는데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9강의 글쓰기교실을 통해 주민들은 서로가 쓴 글을 나누며 맺힌 마음을 풀어내고 아픔을 치유했다. 일촌회원이자 사업 담당자였던 채송아 선생님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는 시간”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 진행되었던 글쓰기교실에서 안미선 님이 엄마들에게 일독을 권했던 책이 바로 이 책 “내 날개 옷은 어디갔지?”이다.

이 책은 1부에서 3부까지는 작가가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써 살아가며 겪은 일상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수기를 담고 있고 4부에서는 야쿠르트 판매원, 봉제업 종사자, 텔레마케터,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일상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자세히 그 일상에 귀 기울여 보지 않았던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살아 숨 쉰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내 삶의 이야기가 뭐 그리 특별하냐며 손사레 칠지도 모르지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4시간 일하고 만 원 번다(2004년도 인터뷰 당시 기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고등학생 민서(가명)와 서연(가명)이 이야기나 이대로 일하게만 해달라는 청소용역 박선숙(가명) 님의 이야기, 그리고 매일 같이 흔들리는 사명감을 부여잡고 무릎에 물 찰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는 사회복지사 백명주 님의 이야기 등이 담긴 4부 “여성의 일과 삶”도 인상적이었지만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아이를 출산하여 기르는 일상을 담은 1부 “아기 낳는 날”의 생활 글들이었다. 아무래도 현재 내가 비혼 남성이다 보니 가장 낯설고 생소한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지면 관계 상 1부 내용 중 한 대목만 소개해본다.

칭얼대는 아기를 얼러 재우고, 그 짬에 밥을 국에 말아 바닥에 놓고 후루룩 먹었다. 아기 보면서 끼니 챙겨 먹는 것도 큰일이다. 꽃 놓고 수 놓고 할 겨를이 없어 그냥 감자나 무 같은 것에 국간장만 넣고 끓여 종일 밥을 말아먹는다. 허겁지겁 먹는데 아기가 울 때는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화가 불끈 치민다. 내가 죄인도 아닌데, 밥 먹고 화장실 가고 목욕하는 기본인 것도 맘 놓고 못 하고 조마조마해야 하니까. 남편이 느긋하게 샤워하는 물소리가 부러울 때도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 내 시간이 사라졌다. 잠깐 나가려 해도, 천천히 밥술이라도 뜨려 해도 아기를 다른 이에게 부탁하거나 남들 편의에 따라야 한다.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아기 키우는 내 친구는 미장원에 가려고 몇 달을 벼르다 겨우 남편이 아기를 봐주어 집 밖에 나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단다. “어떻게 다들 그렇게 사나 몰라.” 애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 눈치 보고 할 일은 다 하면서 자기 한 시간 얻기가 구차한 주부. 나무꾼이 숨겨둔 날개 옷을 찾는다면 집을 박차고 다시 훨훨 날아가고 싶지 않을까.                                                                                             p.32 1부. 아기 낳는 날 中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은 수동적 여성상의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가난한 노총각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결혼에 성공한다. 나무꾼은 아이 셋을 낳으면 날개옷을 돌려주겠다며 선녀가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선녀는 기지를 이용해 빼앗겼던 자신의 옷을 되찾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나중엔 하늘나라 두레박 줄을 타고 올라온 나무꾼까지 구원하여 하늘나라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선녀에게 날개옷은 빼앗겼던 긍지, 능력, 인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가 책 제목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우리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이고 잠시 시련을 겪고 있을 뿐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 공존하며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저마다 잊고 지냈던 날개옷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면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읽어내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실천에서 강조하는 임파워먼트란 실상 주민들에게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다고 확신을 심어주는 강화과정이다. 척박한 환경에 비틀대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그 답은 생활글쓰기를 통해 일상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찾을 수 있으리라. 잊고 지냈던 날개옷을 떠올려 하늘로 돌아간 선녀처럼 말이다.

작가는 여는 글에서 “자기가 보고 겪은 일을 그대로 글로 쓴다는 건 다이너마이트 같은 거다”라며 생활글쓰기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안건모(월간<작은책> 발행인) 님의 추천사 제목처럼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가 인간다움의 가치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실현하려는 일촌회원들의 일상 곳곳에서도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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