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책장]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

일촌책장 [일촌책장]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에 댓글 닫힘

a-8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

글. 배명수 | 하안종합사회복지관 과장

복지관의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새로운 환기가 필요할 시점에 ‘일촌공동체’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가 주관하는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촌공동체와는 지역복지실천연구팀으로 인연을 맺은 지가 2013년도이니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사람을 키우고,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일촌에서 주관하는 교육은 과연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

a-168

4강 중 첫 포문을 열어준 유창복 대표님의 ‘마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강의는 단비처럼 내 갈증을 해소해주었고 그의 저서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를 이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맞아~맞아!”를 외치며 손뼉을 치기도 하고 “그래~그런 진상들 있지” 하며 우리 마을의 진상을 떠올리고 “이거 해볼 만 한데~”하며 반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긁적인 것들도 꽤 된다. 현재 사회복지기관에서 주민들과 신명나는 일을 작당하는 사람들이나 마을사업을 오랫동안 실천해온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그 중 가슴에 팍팍 꽂힌 문장을 소개해본다.

밑줄긋기 1. p60

도시에서 마을을 이루려면 이웃들과 ‘마음을 내 접속하는 관계’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쌓아가기 위해 ‘지지고 볶는 과정’을 서로 참고 견뎌내야 한다.

(완전 공감)그래~마을활동이 좋아 보이는 것만 부각되다보니 큰 기대를 안고 시작하지만 막상 해보면 갈등의 연속이지~사람과 예산이 부족해서 접기보다는 ‘관계’로 인해 없어지는 경우가 참 많지~하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모였는데 이 갈등!너무나 당연한 것 아닐까?이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나갈 때 관계가 단단해지는 것이지~

밑줄긋기 2. p95

같은 마을이라 해도 마을 사람 제각기 형편과 조건이 다르고 취향과 욕구가 다르다. 이 ‘다름’ 때문에 작은 일 하나도 같이하자면 품이 참 많이 든다. 번거로울 때도 많다. 이래서 마을에서 뮌 일 하나 제대로 해보겠나 싶다.

(세상에!!)가끔은 그냥 기관에서 빨리 결정하는 것이 속 편할 때가 많지. 이 사람 눈치, 저 사람 눈치 사~알짝 보면서 눈칫밥만 느네~근데 그냥 후딱 진행하면 남는 건 보고서에 적힌 허상의 참여자 100명일뿐이요~관계와 사람, 그리고 흔적이 전혀 남지 않지~조금 더디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정답이요, 순리!

밑줄긋기 3. p100

마을살이를 하다보면 이런 진상 꼭 있다. 여러분도 벌써 한두 사람 떠오르지 않나? 그런데 그런 진상이 사라지면 일이 술술 잘 풀릴까?(중략)하지만 막상 그 진상이 사라지고 나면 그동안 멀쩡했던 사람이 나서서 진상질을 대신한다. 기가 찰 일이다.

어제도 복지관 엘리베이터를 들이박고 관장 나오라는 분! 비틀비틀 사무실 들어와서 커피 주문하는 분!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분들.. 술이 깨면 반전의 모습이다! 다음날 함께 동네화단에 꽃을 심기도 하고, 종이공예 강사로 활동도 하신다~!이분들 정체가 뭘까? 복면가왕보다 더 반전이다!

밑줄긋기 4. p328

마을살이는 주민들이 자발적인 노력으로 마을(관계망)을 형성해가는 원리로서, 이른바 활동가들이 마을을 ‘만들기’위한 목적으로 의식적으로 벌이는 ‘마을활동’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한다

마을 만들기라는 단어는 어쩜 주민 자체를 수동적이고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마을은 원래 만들어져있는데 갑자기 만든다고 소란피우는 것은 아닌지, 그냥 주민들이 마을살이를 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뒤에서 조용히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은 아닐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일터에서 주민들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 됐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로서 나의 실천을 성찰하게 되었다.

a-10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최근 몇 년간 ‘마을’이 정말 화두이다. 하지만 현장의 사회복지사에게 ‘마을’이라는 단어는 다소 낯설고 거리감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사회복지사의 유년시절에 ‘마을’과 ‘공동체’를 경험한 시간이 부재하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두 번째는 ‘주민 주도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사회복지사로서 그동안 실천해 오던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거북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4년 정도 주민들과 부대끼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마을’과 ‘주민’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고, ‘마을’안에서 주민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회복지사로서 관점도 넓어지고 깊어짐을 느낀다.

한 예로 술이 아니면 ‘천상 여자’이신 이분은 주변 사람을 참 잘 챙기신다. 하지만 만성적인 알코올중독으로 한번 술을 드시면 보름 넘게 폭음을 하고, 길 한복판에서 쓰러져 잠을 자기도 하고,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한다. 복지관에서 이분에게 마을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제안해드렸는데 결국 알코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최근에 외출 후 며칠째 행방이 묘연했다. 결국 3일 만에 단지 내 공원에서 발견되었는데, 어디서 넘어지셨는지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나 있고, 옷에는 구토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악취가 났다. 30분 정도 대화하면서 일단 집으로 들어가자고 권유했지만 완강히 거부하셨다. 그런데 그때 같은 동에 사는 통반장님이 오셔서 욕을 한바가지 퍼붓는다. 아니 그래도 나이가 50줄인데 저런 면박을 주는 것이 심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집에서 약을 챙겨 와서 쓸린 상처에 투박하게나마 약을 발라주시며, 협박인 듯 협박 아닌 협박을 해 결국 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도 주민이다.

사실 이웃 주민들은 초지일관 윽박지르고 혼내셨지만 속으로 제일 걱정도 많이 하시고 집안청소부터 대소변이 묻은 바지까지 빨래하는 등 고생도 제일 많이 하셨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마을’ 안에서 주민들이 서로 살피고 돌봐주는 것, 이것이 마을살이가 아닐까? 전문기관에서 전문가랍시고 자꾸 불필요한 개인 신상을 묻고, 일회성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 보다 ‘마을’ 안에서 가까운 이웃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자신들의 형편 내에서 품을 내서 돌보는 것, 이것이 어쩜 ‘마을’과 ‘이웃’이 주는 위력이고 ‘안전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사회적 관계망이 더욱 촘촘해진다면 지역의 다양한 문제와 욕구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쩜 이것이 도시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우리가 실적화하지 못한, 예전부터 주민들끼리 서로 이렇게 돕고 살폈는데 우리만 알지 못한 마을살이가 아닐까 자문해본다.

a-163

출처. 나무의 행복한 블로그

이 책의 저서 유창복 대표가 말한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이 가능한가의 물음에 어쩌면 지금은 ‘가능하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사회복지사로서 나도 마을을 만들기 보다는 마을살이를 주민들과 함께 하며 깊숙이 천천히 스며들고 싶다. 주민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과 기대를 꿈꿔본다.

사람을 키우고 관계를 중시하는 일촌의 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육생들을 배려해주었다. 아마도 교육 이후 지금부터 맺어지는 진짜 ‘관계’에 내가 얼마나 품을 내서 하느냐에 따라 ‘일촌_살이’가 시작될 것이다.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