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의 ‘새’공동체 이야기] 4.16과 5.18 사이 혹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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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 정읍의 길거리엔 아직도 2천여 개의 노란 세월호 추모 깃발이 노란 손수건처럼 걸려 있습니다. 내걸린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지만 색이 바래지고 가끔 찢겨진 것들도 눈에 띕니다. 지나가던 시민들 중 어떤 이들은 불쾌감과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머지않아 깃발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떼며 절을 올리던 그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2주일 전쯤, 삼보일배로 정읍 인근을 지나던 단원고 아빠와 딸의 오늘이 궁금합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쯤에서 절을 올리고 있을까요? 광화문을 둘러싼 차벽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 집회 참가자 연행 등… 세월호와 관련된 보도도 조금씩 시들해진 지금, 수염 덥수룩한 단원고 아빠의 어설픈(?) 손수건 마술이 떠오릅니다.

5.18광주, ‘영점’에서 다시 보기

그리고 다시 5월, 광주가 내게로 옵니다. 대학생이 된 딸이 다음 주에 광주에 가게 됐다고 전합니다. 같은 날 저도 광주에 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예년의 편치 않은 마음과 모호함에서 조금은 벗어났습니다. 세월호의 참혹한 1년이 ‘5.18 광주’를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원점(原點)’, 혹은 ‘영점(零點)’에서 다시 보기.

지난 4월 말 광주의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는 ‘광주의 역설(逆說)’을 조금은 짐작케 해주었습니다. 야당이면서 여당, 혹은 피해자이면서 약간의 기득권자(?). 빛고을 광주의 마음은 피해의식과 변혁의식 사이 어디쯤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무소속이라는 이름의 더 센 야당, 만년 야당과 만년 여당 사이 ‘역설의 광주’를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아니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역설’이 생각납니다. 이번엔 치유의 역설입니다. 등짝 어디 종기가 나야 비로소 내 몸인 줄 압니다. 아프지 않으면 하나인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다 낫고 나면 또 남이 됩니다. 상처가 아물면 너와 내가 하나였음을 잊어버립니다. 치유의 역설, 혹은 딜레마입니다. 아니 실존입니다.

영점에서 다시 보기. 제로베이스, 백지상태에서 다시 보려 합니다. 5.18광주를, 35년이 5.18을, 삶/생명의 자리에서 다시 응시하려 합니다. 4.16의 눈으로 5.18을 보려 합니다.

대인시장의 ‘새’ 공동체

“어렵고 힘든 이들이 즐겨 찾는 광주 동구 대인시장의 ‘천원 백반집’이 애초 운영자인 김선자 할머니가 별세한 이후에도 기부가 넘쳐나면서 정으로 밥을 짓고, 정으로 먹는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말 광주 지역신문에 실린 천원식당 기사입니다. 천원식당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어 꽤 유명해졌습니다. 김 할머니가 시장 안에 식당 문을 연 것은 지난 2010년쯤이었다고 합니다. 애초 죽집을 차리려 했다가 차라리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끼 천원짜리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해 뜨는 식당’, 이름도 멋집니다. 하루 100여명이 넘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고 합니다. 쌀과 김치 등을 기부하는 온정의 손길도 끝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할머니가 대장암으로 쓰러졌습니다. 잠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상인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식당은 계속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병환이 악화되어 왔던 할머니는 결국 (본래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천원 식당을 계속 이어가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인시장 상인회가 그 뜻을 이어 받았습니다. 이제 ‘김 할머니의 천원식당’은 ‘대인시장의 천원식당’이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확장된 공동체 마음입니다.

할머니에게 천원식당은 봉사 이전에 기쁨이었습니다. 자신도 한때 밥을 굶어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느낌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할머니는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옛날 사업에 실패했을 때 쌀 없다는 말을 못해서 굶어보기도 했다”며 “천원은 말하자면 떳떳하라고 부끄럽지 않으라고 내는 돈이야. 돈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식당은 치유의 역설을 넘어섭니다. 상처가 아물면 상처가 곧 나의 일부임을 다시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배고픔을 면하고 나면, 배고픈 나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굶어봤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호스피스와 산파

호스피스와 산파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사회적 대전환기에는 시대를 잘 갈무리하도록 돕는 호스피스의 역할과 새로운 삶의 양식을 탄생시키는 산파의 역할이 동시에 절실하다고 합니다. 5.18민주항쟁은 시대의 몫을 이미 다 했습니다. 편히 쉴 때입니다. 돌아갈 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삶을 얻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호스피스로써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는 이들을 편안케 하고, 산파로써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산파(産婆)’는 말 그대로 새 생명의 탄생을 돕는 시대의 할머니입니다.

혹 ‘응답하라 1980’이라는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2015년 오늘 5.18광주는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까요? 대인시장의 천원식당이 그 응답 중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요? 5.18은 분명 독재에 항거한 민주항쟁이었습니다. 동시에 35년 전 5.18 광주는 민초들의 본능적 저항이었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연민과 박애의 ‘생명공동체’였습니다. 우리의 응답은 이미 이 사이 사이에 숨어있는 지도 모릅니다. 혁명이란 폭력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여기 나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공동체 만들기 아닐까요? 새로운 관계, 새로운 생활, 새로운 사람으로의 차원변화 아닐까요?

2015년 오늘, 5.18 광주(光州)는 무엇보다 삶/생명의 빛입니다. 그리고 다시 4.16 세월호. 단원고 아빠와 함께 걷고 또 걸어야겠습니다. 오늘 아침도 내일 아침도 절하고 또 절하겠습니다. 삼보일배 하는 어느 길바닥에서 새 생명의 빛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대인시장의 천원식당처럼 그의 마술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지금 여기서 행(行)하겠습니다.

글. 주요섭 | 한살림연수원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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