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사회적시민] 사회적시민 연재를 마치며

홍기빈의 사회적시민 [홍기빈의 사회적시민] 사회적시민 연재를 마치며에 댓글 닫힘

0626-101

글. 홍기빈 | 칼 폴라니 사회경제 연구소 연구위원장

지금까지 사회적 시민의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다루지 않은 중요한 문제 하나가 있다. 이 연재의 마지막으로 그 문제를 꼭 이야기하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문제는 ‘구조’와 ‘개인’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연재를 통해 우리 모두가 ‘능동적으로 사회를 구성해 낼 수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우리의 현실에는 이러한 ‘사회적 시민’은 찾기가 쉽지 않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고 오직 자신에게 구체적인 이익이 될 때에만 사회를 외치고 연대를 외치는 ‘개인적 시민’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사회 전체에서 마치 하나의 정상적 혹은 규범적인 인간의 모습처럼 다루어지며,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귀찮은 사람 심지어 위험한 사람으로 몰려 유형 무형의 갖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개인적 시민’들의 세상으로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데, 과연 ‘사회적 시민’이 태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을 시도하려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러한 압도적인 구조의 힘 아래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이렇게 개인 하나하나가 변하기를 촉구하기보다는 구조를 먼저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구조’와 ‘개인’의 문제는 마치 닭과 달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서로 엮이고 얽혀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구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개인이 그 구조의 법칙과 다른 원리로 행동하는 것은 저지당하거나 아예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시 사람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고, 그러한 움직임은 어쨌든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 이런 연유로 한번 만들어진 사회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리는 조지 오웰의 명작 [1984년]에서도 절절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그런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구조란 없으며, 언젠가 무너지지 않는 구조도 없다. 그러한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개개인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이것이 구조의 일각을 허물어내고, 이것이 다시 변화를 만들어내는 더 많은 개개인들을 끌어내는 등의 되먹임 구조를 만들어낸다. 변하지 않던 시절에는 구조 유지의 인과관계의 고리였던 것이 이제는 구조 파괴 혹은 변화의 고리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여러 가지 운때가 맞아야 하겠으나, 분명한 것 하나는 구조를 겁내지 않는 개개인들이 출현하는 것이 그 요인의 하나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구조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개인이라는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구조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조건과 상태를 결정하는 수없이 많은 인과관계를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각의 도구 혹은 일종의 교육적 도구일 뿐이다. 이는 지도와 마찬가지이다. 경도 위도가 그어지고 그 위에 등고선이 죽죽 그어진 산들이 솟아있는 지도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리적 공간이 아니며, 그것을 머릿 속에 표상하기 위해서 종이 위에 일정한 규칙과 약속에 따라 그려놓은 허구의 그림일 뿐이다. 우리의 삶을 옥죄고 건강한 사회의 출현을 가로막는 현실의 요인은 무수히 많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어떤 인과 관계를 머릿 속에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그러면 사회과학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러한 요인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엮어낸다. 이는 지도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요인들을 묶어놓은 그림일 뿐이다.

여기서 한 번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그렇다면 애초에 왜 이러한 그림을 그리려고 했을까? 우리의 삶에서 극복하고 싶은 여러 요인들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하고 분류하고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즉 구조라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애초의 동기가 바로 그러한 요인들을 극복하여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행동의 욕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구조의 압도적인 힘을 이유로 들어서 개인의 무력함을 호소하고 이를 이유로 적극적인 행동을 주저하고 회피하는 일이 하나의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구조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그 구조로 서로 연결되어 지도 위에 그려진 무수한 이런저런 요인들 즉 우리 삶을 힘들게 하고 부족하게 하고 옥죄게 만드는 여러 가지 불합리와 부조리의 요인들일 뿐이다. 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대단히 명확하다. 그러한 요인들이 하나하나 나타날 때마다 이를 붙들고 씨름하면 된다. 물론 이 씨름은 대단히 어려운 싸움이다. 그 요인들은 다른 요인들과 촘촘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쉽게 없어지지도 않고 또 약해지지도 않는다. 되려 다른 요인들과 얽혀서, 자신을 바꾸려는 행동에 나섰던 이들에게 가혹한 반격과 보복을 가하기도 한다. 이 때 우리는 기왕에 만들어 두었던 구조라는 지도를 활용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극복되려면 어느 지점을 바꾸고 공략해야 하는지 또 그 요인들이 어떻게 다른 요인들과 결합되어 반격을 가해올지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으려면, 그 요인들의 인과 관계가 총체적으로 그려진 지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즉, 구조의 파악은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을 더 잘 성공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 현실에 존재하는 실체도 아니며 또 우리의 행동과 변화의 노력을 위축시키는 이유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요인들 하나하나와의 맞씨름 속에서 ‘사회적 시민’은 자라난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아무리 많은 고민을 한들 그것이 그 사람의 행동과 인생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실제로 그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그러한 생각에 입각하여 구체적인 활동에 나설 때이다. 구조는 우리 머릿속에서만 살고 있는 하나의 허깨비에 불과하다. 따라서 구조와 실제로 맞닥뜨리거나 구조와 실제로 싸움을 벌이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저 우리 눈 앞에 닥쳐있는 구체적인 문제들 구체적인 쟁점들일 뿐이다. 인생과 현실은 좁은 복도와 비슷해서, 제아무리 많은 적군이 나에게 몰려온다고 해도 한 번에 상대해야할 적은 항상 한 명 뿐이다. 그 싸움을 잘하면 된다. 그 싸움을 이기면 된다. 그렇게 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도 당신도 새로운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 현존하는 한국형 자본주의 모델은 우리가 생각하는 발달된 복지 국가 모델과는 큰 거리가 있다. 하나의 정책을 바꾸려고 하면 다른 정책이 걸리고 또 세금과 재정 문제가 발생하는 등, 한마디로 여간해서는 꼼짝조차 하지 않을 것 같은 강고한 구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따금씩 들려오는 북유럽의 발달된 복지 국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고, 과연 이런 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하는 실의에 빠지게 되기 일쑤이다. 그럴 필요없다. 거창한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멀게 느껴진다면, 우리 삶의 현장에서 부닥치는 작은 문제들부터 붙잡고 싸우면 된다. 그러다보면, 정작 바꾸어야 하는 것은 구조도 개인도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각을 얻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순간이 바로 앞에서 말한, 구조 전체의 변동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이 지면에 지금까지 써왔던 부족한 글들은 바로 이렇게 바꾸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용기를 내게 하기 위해서 쓴 글들이다. 그리고 이 글들이 목적했던 독자는 여러분이 아니라 사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 글들을 쓰면서 나도 이제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삶의 크고 작은 현장에서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나 자신을 바꾸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굳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지는 않겠다. 내 믿음 신념대로 가다보면 자연히 우리 모두 만나게 될 것이니까. 수없이 늘어나 세상을 가득 채우는 ‘사회적 시민’이 된 우리들로서 말이다.

‘사회적 시민’을 주제로 하는 정기적인 원고로 독자들에게 ‘생각하고’, ‘움직일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홍기빈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댓글이 닫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