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사회적시민] 한국인들은 ‘평등’의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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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평등의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글. 홍기빈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다. 주지하듯이, ‘자유, 평등, 박애 (연대)’라는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오늘날 모든 민주 사회의 상식이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최소한 원리상으로나마 ‘법 앞에서의 평등’이 구현된 법치 사회요 또 원리상으로나마 모두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자 하는 사회가 아닌가.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왜 ‘한국인들에게 평등의 의식이 있느냐’고 묻는 것인가.

내가 의문을 품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은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및 국가의 미적지근한 대응 – 사실상 방기에 가깝다 – 에 대해 어째서 분개하고 항의하는 이가 이토록 적으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평등’이란 어디까지나 법적 차원에서의 평등이지 각자 능력과 깜냥이 달라 생겨나기 마련인 경제적 능력에서까지 평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평등이라는 말 한 마디를 앞세워서 경제적인 차이까지 모두 없애려 든다면 그건 공산주의가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는 19세기에나 통하던 평등 개념이다. 최소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평등의 개념을 이야기하면 여기에는 당연히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가 포함된다. 1945년의 대서양 헌장, 그리고 이를 발전시켜 1966년에 나타난 세계 인권 선언을 보라.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의 빈곤과 궁핍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이 바로 평등이라는 원칙이 전면에 명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우리가 1948년 대한민국 수립 당시에 채택한 헌법 자체가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나타나지 않도록 사회와 국가가 응당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해 있다. 시장 자본주의의 질서를 부인하지 않더라도, 거기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심각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과 삶의 가능성을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오늘날 상식이 되어 있는 ‘평등’의 정신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아직도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전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이 평등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낮설게 느끼고 있으며, 일껀 이루어졌던 무상급식의 제도는 지금 언제 후퇴할 지 모르는 상태이다. 한없이 치솟는 전세값 앞에서 많은 이들의 주거 생활조차 위협받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에 맡겨 해결해야 할 일’이므로 전월세 상한제 등의 도입은 계속 무시되고 대출받아서들 해결하라는 ‘대책’만 나오고 있다. 고용 관계를 맺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존중받아야 할 인격과 계획할 수 있는 인생이 있어야 하거늘, 오늘날 노동 시장의 아래 절반은 사실상 몇 푼의 헐값으로 맘대로 아무렇게나 부려먹다가 아무 때나 내보낼 수 있는 조선 시대의 ‘머슴 시장’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태어난 가정 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재능과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세칭 일류 대학은 사실상 지배층의 신분 세습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독점되어 가고 있으며, 계속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대한 통제와 조절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결코 평등의 상황이 아니며, 이의 시정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의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여전히 우리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는 낮선 이야기이다.

어째서 그럴까? 나는 일제 시대의 경험이 이러한 한국인들의 ‘평등’ 의식 부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믿는다. 본래 방금 말한 것과 같은 평등 개념의 출현과 그것의 사회경제적 영역으로의 확장은 봉건제의 타파와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경험 속에서 출현하고 확장되는 일이다. 온갖 사회적 특권을 움켜쥔 봉건 지배 계급으로 인해 박탈과 부당함을 당하는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먼저 모두가 평등한 한가족, 즉 ‘민족 nation’의 성원임을 주장하면서 평등 개념이 생긴다. 그리고 산업 자본주의의 팽창을 겪으면서 그 ‘민족’이 사실상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로 나누어져 있다는 뼈저린 인식을 거치면서 그 평등 개념이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확장되며, 이것이 사회 보장 입법과 노동 관련 입법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들은 근대 사회로의 전환과 자본주의의 초기적 발전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아래에서 식민지로서 겪게 되었다. 식민지 권력은 기본적으로 ‘한가족’이 아닌 ‘그들’과 ‘우리’로 갈라져 있는 상태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근대 사회로의 전환은 시작되었지만 평등한 ‘민족’을 전제로 한 평등 개념이 나타난 것도 아니며, 자본주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불평등을 ‘우리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여 해소하는 장치나 동력도 없었다.

문제는 일제가 물러가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이다. 일본 지배 세력은 물러갔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사회 구조와 권력 구조는 근본적으로 청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려온다. 새로이 권력을 잡은 대한민국의 지배 세력은 이러한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떠맡았다고 보기 힘들다. 옛날 일본의 지배 세력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대한민국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구성하는 작업을 자신들의 임무로 여기지 않았으며 그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상으로만 다루었고 그 과정에서 몇 십년에 걸친 권위주의 독재 체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나라 전체 차원에서의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인 ‘민족’을 형성하고 그 평등의 논리를 사회경제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는 임무가 이렇게 방기되자, 사람들은 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온갖 위험을 분산하고 방비하는 방법으로서 가족과 친족의 네트워크에 깊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에 가족 복지가 뿌리내리게 되는 계기였다. 또 이것만으로 부족할 경우 지연과 학연에 근거한 여러 비공식적 관계망을 강화하여 이것을 자신을 보호하는 하나의 ‘파당’으로 단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에서는 모두의 평등한 공동체가 나타나는 대신 가족과 친족 관계에 기댄 상호 부조, 지연과 학연과 종교에 근거한 후원자 관계가 ‘사회’의 전부가 되어 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집단들에는 ‘평등’의 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족은 항렬과 촌수라는 논리로, 그 밖의 여러 집단들은 선후배와 직분 등의 논리로 철저하게 상하 서열 관계가 맺어지게 되어 있다. 여기에 들어간 성원은 이러한 위계 서열 관계를 재빨리 파악하여 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으면 이러한 집단들에서 배제되게 마련이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일상 생활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성격이다. 남성 우월주의와 연령, 학벌, 학번 등에 의한 위계와 서열이 있을 뿐, 평등한 관계를 찾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아직도 ‘평등’의 정신이 제대로 내면화되어 있지 않다고 믿는다. 우리는 아직도 100년전 일본인들이 씌워놓은 무책임하고 위계적인 사회 관계의 틀에 꽁꽁 묶여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만나 관계를 맺는 일에 대단히 서툴다. 그 여파로, 우리는 우리의 동등한 인격체인 이웃들이 정말로 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처해 있다고 해도 이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함께 분노하고 항의하기보다는 ‘없는 애들은 저런 꼴을 당해도 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위계 의식으로 선을 그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성취했다는 섣부른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이제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먼저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정신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깊숙히 파고 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몇 개의 시혜적 복지 정책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로서의 사회경제적 보장이 주어져야 한다는 복지 국가가 이 땅에 실현되려면 이는 반드시 동시에 혹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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