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 건 (일촌복지아카데미 교장)
“지역복지실천현장과 마을공동체운동, 따로 갈 게 아닙니다” 글 / 정석구 본회 상임이사
한 십년 전 쯤, 전국에 있는 지역자활센터들의 전체회의에서 보았던 송건 관장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회의가 길어져 예정된 종료시간이 꽤 지났는데, 그래서 대체로 마무리되는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회의장 저 뒤편에 앉아 있던 송 관장님이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대강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이러이러한 점을 분명히 하자’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내 일각에서 회의시간 늘어진다고 투덜거리는 소리도 나고 ‘이번엔 또 누구냐’는 듯이 못마땅하게 뒤돌아보는 시선들도 있었지만, 송 관장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당히 긴 발언을 그 특유의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계속했습니다. 저는 “그 말은 맞다”고 혼자 중얼거렸던 것 같습니다. 송 관장님은 그 후로도 이런저런 모습으로 그렇게 까칠하거나 샤프한 인상을 주로 풍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지역자활센터 선배관장님 두 분의 회갑을 축하해드리기 위한 여행을 몇 사람들과 함께 하는 중에, 송 관장님이 일정상 같이하지 못한다며 회갑축하선물을 누굴 통해 보내셨더군요. 아주 감성적인 색감의 스카프와 여행경비 찬조금이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두 분 뿐 아니라 여행을 함께 한 여러 사람이, 송 관장에게 저런 면이 있었냐며 놀라워했지요. “알부남!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네~”란 말이 이어져 나왔습니다. 도봉지역자활센터 관장으로, 일촌공동체 창립 초기부터 함께 참여하면서 지역복지실천사례연구팀 구성원들에겐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맏형 노릇을 해주고 계시다고 주변에서 들었습니다. 그가 요즘 꽤 바빠 보입니다. 9월 27일 있을 지역복지활동가대회 준비로요. 이 대회를 함께 준비하는 서울시복지재단이나 여러 참여단체들도 있으니 실무적인 여러 일들은 역할분담해서 가겠지만, 이 대회를 처음 제안한 선배활동가로서 주제 선정이나 주요연사 초대 등 여러 면에서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할 테고 또 함께 신경써야할 일들이 많겠지요. “요즘 마을공동체운동 붐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이걸 관에서 주도하는 일시적인 트렌드쯤으로 여기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그 내용을 보면 일촌공동체가 창립초기부터 주창해온 ‘사람중심 지역중심’의 지역복지운동, 공동체관계회복운동과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행정의 개입이나 지원이 있건 없건 바닥으로부터의 마을공동체운동, 지역복지운동을 좀 더 주체적 입장에서 강화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지역복지활동가대회를 제안하면서 지역복지활동가들과 마을공동체활동가들이 만나고 합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자는, 최소한 그런 단초라도 만들어보자는 소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시대 지역복지운동이 지니는 최고의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는 스승들의 말씀을 함께 듣는 시간, 또 각자의 관심주제별 강의와 대화를 통해 참여활동가들 간의 공감대를 넓혀볼 수 있는 시간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촌공동체 내부적으로 봐도 그동안 일촌복지아카데미 등을 수료한 지역복지활동가들이 많이 있고, 그들 중 상당수는 제도적인 복지전달체계의 일부분임을 넘어 보다 더 본질적인 사람중심의 공동체복지운동을 갈망하고 있는데, 그런 활동가들에게 비슷한 갈망과 지향을 지니고 있는 동지들을 폭넓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그는 스스로 돌아볼 때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어릴 적부터 다닌 교회에서부터 키워온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1980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자연스럽게 기독학생회에 참여했고, 당시 유신독재의 긴 터널을 막 벗어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이 분출하던 시대상황에서, 전두환의 신군부세력에 저항하는 학생운동 참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대학 3학년 때 기독학생회 엠티에서 발제를 하다가 성북경찰서 정보과 형사에게 연행되었고, 그 때 폭압적인 공권력으로부터 기독학생회 학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으로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목회를 결심해서 신학대학을 다녔고, 민중교회 공동목회와 문화선교운동·노동문화운동에 열정적으로 투신하는 시기를 거칩니다. 그리고 87년 민주쟁취 이후로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좀 더 긴 호흡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이미 부인과 딸이 있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도 비껴갈 수 없는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그 즈음 부인 역시 그와 함께 부부활동가로 나다니느라 엄마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과 그 지속가능성에 대해 되물어보곤 했답니다. 결국 부인은 다섯 살 난 딸아이를 가까이 돌보며 동네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시 당시 딸아이를 보고 또 부인이 음악학원 꾸려가는 걸 보면서, 딸아이교육과 나아가 당시 우리 사회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터에 지방자치제가 부분적으로나마 부활되고 세계화와 지방화의 동시진행이 일어나는 글로컬리제이션(globalization과 localization의 합성조어)의 시대흐름 속에서, 지역운동의 전망을 바라보게 되었답니다. 자신의 고향인 도봉지역에서 아이들, 다음 세대를 함께 생각하는 긴 호흡으로 풀뿌리운동에 천착하리라는 결심이 선 후, 좀 더 구체적으로 지역사회 커뮤니티센터로서의 복지관 역할을 주목했고, 가난한 지역주민들을 각자의 삶과 지역사회의 공생주체로 세우는 전망을 바라보며 지역자활센터를 운영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지역자활센터를 둘러싼 제도적 한계 등과 씨름하면서 지역자활센터 내부 뿐 아니라 지역사회 연대를 통해 초심 속의 전망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랍니다. 얘기를 듣다보니 참 열심히 살아오셨다 싶었습니다. 자신의 참된 모습을 예수의 삶에서 찾고자 삶의 지향을 그렇게 두었고, 그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려 애써온 삶의 내면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앞으로의 삶도 지금까지와 같이 그렇게 가면 일촌공동체운동에도 큰 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일촌공동체운동에 참여하면서 일촌공동체가 추구하는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또 그렇게 삶을 대하는 태도나 자기실천을 자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더 깊이 더 낮은데서 자기 삶을 키워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조직체이자 관계망으로 일촌공동체운동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추세대로 제도화된 사회복지영역이 점점 확대될수록 이런 추세를 진정 바람직한 사회변화로 이어내는데 일촌공동체와 같은 민간운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사람을 키우는 역할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때로 그렇게 까칠해보여서 되겠냐고 짓궂게 물었더니, 스스로도 자기 성격이 못마땅하다고 쑥스럽다는 듯 씩 웃으며 얘기합니다. 혈액형이 AB형인데 A형적 냉철․소심함과 B형적 격정의 극단으로 갈 때가 종종 있어서 중화의 내공을 쌓는 게 과제라고요. 앞으로 누구라도 혹시 송 관장님의 까칠한 모습 보시면, “아, ‘알부남’ 송 관장님이 지금 계속 노력중이시구나”라고 생각하시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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